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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도적 개혁운동에 대한 비판적 고찰 김강석 2018-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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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도적 개혁운동(New Apostolic Reformation Movement)에 대한 비판적 고찰 

 

 

목 차

 

1. 서론

1) 연구 동기와 목적

2) 연구 범위와 방법

 

2. 신사도운동의 기원과 개념

1) 기원

2) 개념

 

3. 신사도운동의 현황

 

4. 신사도운동의 내용

1) 현상적 특징

2) 신학적 특징

3) 목회적 특징

 

5. 신사도운동에 대한 평가

1) 지도자 개인에 대한 절대적 신뢰에 대하여

2) 예언과 은사 사역에 대하여

3) 실용주의적 방법론에 대하여

4) 대형교회 지향성에 대하여

 

6. 결론

 

 

1. 서론

 

1) 연구 동기와 목적

 

한국 교회의 정체 현상을 극복할 하나의 새로운 대안으로 신사도적 개혁운동을 추종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많은 목회자들이 이 운동에 직접적으로 동참하거나 또는 간접적으로 뜻을 같이 하고 있으며, 이 운동의 흐름을 개교회의 목회에 적용하고 있는 사례들이 늘어가고 있다. 실제로 신사도교회라고 불리거나, 그렇게 자처하는 많은 교회들이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는 사례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비판적인 주장들과 부작용에 관한 보고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그들이 주장하는 신학이나 목회방법론들이 기존의 개신교 신학들 및 한국 교회 전통과 심각하게 상충되는 요소들이 적지 않고, 목회적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는 위험 요소들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운동이 가지고 있는 짧은 역사를 고려할 때, 아직 확고한 이론이 정립되지 않은 시점에서 성급하게 결론을 내려 무리하게 정죄를 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닐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이 운동의 파격성과 영향력을 고려할 때, 진지하게 예의 주시하고 연구해야 한다는 점이다. 신사도운동의 개념과 특징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고, 이론적 근거와 내용을 검증해야 할 뿐만 아니라 실제 교회 현장에서는 그 내용들이 어떻게 적용되고 전개되고 있는지도 면밀한 검토가 요구된다.

 

2) 연구 범위와 방법

 

본 논문은 신사도운동에 대하여 그 내용과 특징을 가능한 개관적인 입장에서 살피되, 신사도운동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피터 와그너의 이해를 중심으로 한다. 특히 신사도운동에 대한 체계적인 서술을 담고 있는 그의 저서 교회의 지각변동에 서술된 내용을 주축으로 할 것이다. 먼저, 신사도운동의 기원과 신사도운동에서 사용하는 주요 개념을 알아본다. 그리고 현재 신사도운동의 동향과 그 현황을 세계적으로 신사도운동이 어느 정도 확산되고 있으며, 얼마나 힘을 얻고 있는지 살핀다. 또한 신사도운동의 현상적, 신학적, 목회적 특징들을 정리한다. 그리고 나서 신사도운동을 대표할 수 있는 몇 가지 핵심 주제들에 대하여 평가를 시도한다.

 

2. 신사도운동의 기원과 개념

 

신사도운동은 교회성장학자인 피터 와그너(C. Peter Wagner)에 의해 유래된 것으로서, 그는 성장하는 교회들의 역사와 흐름을 연구하던 과정에서 몇 가지 공통된 패턴들을 찾아내어, 그 특징들을 신사도적 개혁운동(New Apostolic Reformation Movement)’이라 명명하였다. 피터 와그너의 연구의 모체가 된 것은 그의 스승이었던 도날드 맥가브란(Donald A. McGavran)에 의해 1960년대에 창설된 교회성장학파이다. 이 학파는 교회의 양적 정체 현상의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합리적이고 사회과학적인 원리를 교회에 적용하여 교회 성장의 이론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와그너에게 영향을 준 또 하나의 흐름은 오순절운동이다. 오순절운동은 20세기 이후로 갑작스러운 성장세를 보였는데, 이들의 영향력은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과 남미, 아프리카를 비롯한 세계 곳곳의 교회들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렇게 교회성장학파오순절운동의 두 흐름이 서로 연합한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 1990년대 이후 등장한 신사도운동이다. 신사도운동의 흐름은 최근 한국교회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것이 교회 성장의 정체를 극복할 새로운 대안이라 여기는 목회자들이 개 교회의 목회에 적용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피터 와그너가 신사도운동에 개혁(Reformation)’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이 운동이 16세기 종교개혁만큼 중대한 변혁이라는 뜻이다. 와그너는 1975년에 빈야드 운동의 존 윔버와 만나면서 신유 사역에 동화되어 3의 물결을 그와 함께 주도한 이후, 1990년대부터는 교회의 모든 구조와 운영 및 예배에 전혀 새로운 형태와 운영절차와 초자연적인 능력 및 은사주의적 틀을 전개하는 신사도운동을 펼쳐나갔다. 이후 신사도운동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은사주의적 교회들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다.

피터 와그너는 현대에 요구되는 새로운 교회의 형태가 바로 신사도운동이라고 주장하면서, 현대적 사도의 개념에 대하여 설명하기를 기존 교단의 체제와 상반된 형태로 나타난 개인적인 위임으로서, 탈 교단적인 권위를 하나님께서 직접 주심으로써 대사로 임명하신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사도의 영적인 은사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능력으로, 영적인 문제에 대해 비범한 권위를 가지고 많은 교회들을 총괄적으로 지도할 수 있는 리더십을 발휘하며, 교회들은 이런 지도력을 자발적으로 인정하고 따른다.”고 정의하였다. 여기에서 그가 핵심으로 꼽는 단어는 권위이다. 사도라는 직분을 권위의 측면에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사도선교사라는 말을 구별하였다. 에베소서 3:6-9의 내용 중에서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는 사도의 직분으로, 그리고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는 선교사의 직분으로 설명한다. 즉 사도의 은사는 성령의 권위를 받은 직분으로서 현재도 존재하고 있으며,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 교사(4:11), 사도, 권위자, 행정가, 지도자, 조력자(12:7,8) 등이 하나님이 주신 사역적 은사들이라고 인정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칼리스 무디의 말을 인용하면서, 오늘날에도 사도의 직분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오늘날에도 사도들이 있다! 비범한 영적인 지도력을 명백히 보여주면서, 그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기름부음을 받고 사단의 권세에 대항하며, 표적과 기사를 통해 복음을 확증하고, 신약의 패턴과 사도의 교리에 따라 교회들을 견고히 세운다.” 와그너는 사도는 은사(gift)가 아니라 직임(office)이라고 주장하는데, 직임은 개인에게 있는 은사를 교회가 인정하여 공식적으로 그 은사를 사용하도록 자격을 부여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빌 해몬의 말을 인용하여 이렇게 주장한다.

 

그리스도께서 몇몇을 사도가 되도록 하셨지 이따금 사도의 은사를 발휘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사도는 그리스도의 전권 대사가 되어 예수께서 이 땅에 계셨더라면 하셨을 사도적 사역을 수행하는 자이다.”

 

목사가 안수라는 공식적인 과정을 통해 임명되듯이, ‘사도의 직임도 은사로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직임이어야 하며, 하나님이 인정하신 조직인 교회가 카리스마적인 지도자를 공식적인 과정인 안수와 기름부음을 통해 사도로 임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3. 신사도운동의 현황

 

신사도운동은 아직까지 일정하게 규정된 교단의 형태가 아니라 하나의 흐름과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그러한 특징들을 가진 교회들이 서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형태이다. 그러므로 신사도운동의 규모를 규정하여 언급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피터 와그너가 규정한 것과 비슷한 의미로 사도적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거나, 그러한 방향의 특징을 나타내는 교회들에 대하여 개략적인 그림을 그려볼 수는 있다. 브라질에서 지난 몇 년 동안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교회는 에더 마시도(Edir Macedo)가 이끄는 하나님의 나라 세계 교회(the Universal Church of the Kingdom of God)’이다. 신사도운동의 계열로 분류되는 이 교회의 현재 교인 수는 3백만 명이 넘는다. 유럽에서 가장 큰 교회인 포르투갈 리스본의 만나교회(25,000명의 교인들과 여기에서 개척한 22개 교회의 75,000), 런던의 켄싱톤 템플(110개의 민족 출신들로 구성된 6,000),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믿음교회(4,500명의 등록교인과 15,000명의 출석교인) 등도 신사도운동의 특징을 가진 교회들이다. 15만 명으로 추정되는 교인을 가지고 있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랑과 평화의 물결 교회(the Wave of Love and Church)’2,500석의 극장을 구입하여 일주일에 5일간 하루 18시간씩 예배를 드린다. 12시부터 새벽1시까지만 청소를 위해 문을 닫는다. 콜롬비아 보고타에 위치한 세자르 카스텔라노스(Cesar Castellanos) 목사의 국제 카리스마 선교교회(International Charismatic Mission; ICM)’19961만 개의 가정 셀을 열었고, 1997년 말까지 3만 개의 셀을 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1997년 초에 세자르 목사 부부는 테러리스트의 총격에 사망했다. 그러나 교회는 리더가 없는 상황에서도 탄탄하게 성장하여 그들의 목표인 3만 개의 셀을 달성하였다. 이상의 몇 가지 사례들은 피터 와그너가 그의 책 교회의 지각변동에서 소개한 개략적인 수치이다. 이러한 예들은 어쩌면 이 운동의 빙산의 일각일지 모른다.

와그너는 1990년 이후 오순절 교회들 중 신사도적 교회들로 평가받는 세계 교회들의 패턴을 네 가지로 예를 들어 설명하였다. 첫째, 아프리카 독립교회들이다. 이 뿌리들은 상당수의 상황화된 아프리카 교회들이 전통적인 선교부 교회들로부터 갈라져 나가기 시작했던 20세기 초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 세기 내내 아프리카 독립교회들의 성장은 전통 교회들의 성장을 훨씬 뛰어 넘는다. 둘째, 중국의 가정 교회들이다. 특별히 1970년대 중엽, 문화혁명 말엽 이후 호전적인 중국 공산주의 정부 하에 있던 가정 교회들의 배가는 선교학적 현상이 되었다. 그들은 1949300만 명 신자에서 현재 6,000-15천의 신자로 추산된다. 셋째, 라틴 아메리카 풀뿌리 교회들이다. 지난 20년 간 실제적으로 남아메리카의 모든 대도시 지역에서 시작된 가장 큰 교회들은 외국 선교사들이나 선교부가 주도하는 기관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개개인에 의해 목양되는 교회들이다. 그 숫자는 남미에서 약 6천만 명에 이르며, 이들은 오순절 계통이거나 은사주의자들이다. 넷째, 미국 내의 성장하는 신사도교회들이다. 와그너는 <오순절 및 카리스마 운동 사전>을 만들기 위해서 미국에 있는 오순절 및 카리스마 리서치에 참여하면서, 미국에 있는 독립 카리스마 교회들이 그리스도교 중 가장 빨리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고 하였다. 이 네 가지 패턴이 반드시 신사도운동을 정확하게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단순히 피터 와그너의 주장일 뿐이며, 특히 중국의 가정교회들을 신사도운동의 흐름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흐름들이 신사도운동의 특징들을 상당히 보여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지금까지 신사도운동의 개략적인 현황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와그너 자신이 지적한 바와 같이 신사도교회의 정확한 규모는 확인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가 정의한 신사도운동에 속한 교회들을 분류하거나 평가하는 것도 아직은 정확한 표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4. 신사도운동의 내용

 

1) 현상적 특징

 

와그너는 전통적인 교회들과 대비되는 신사도운동의 두드러진 특징을 다음의 아홉 가지로 제시하였다. 새로운 명칭 새로운 권위 구조 새로운 리더십 훈련 새로운 사역의 초점 새로운 예배스타일 새로운 기도 형태들 새로운 재정 새로운 전도 능력에 대한 새로운 우선주의. 이러한 신사도 운동의 흐름은 세계 도처에서 새로운 교회 형태와 새로운 운영방식으로 펼쳐지고 있는데, 이 방식은 개 교회의 행정과 교회 상호간의 관계 및 재정, 전도, 기도, 리더십, 초자연적 능력의 역할 등 예배, 신앙, 교회생활의 전반적인 모든 영역에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는 것이 와그너의 주장이다. 이전의 지도력과는 다른 은사 중심의 영적인 권위가 성령에 의해 개인들에게 위임되었으며, 이것은 법적인 구조가 아니라 관계적인 구조이며, 합리적 리더십에서 카리스마적인 리더십으로 변화된 것이라는 것이다. 그의 은사 중심적 카리스마적 권위 이해는 목사 안수와 성직 임명의 권위까지도 전혀 새롭게 이해하게 하였다. 즉 전통적인 방식을 따라 안수하는 것이 아니라, 신사도교회 내에서 개인적인 관계에 뿌리를 두고 입증된 목회 기술을 가진 평신도는 승인된 신학교와 기관들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교회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신학교(Seminary)무덤(Cemetery)’이라 부르는 농담이 일리가 있다고 말하면서, 신학교육의 문제점을 묘비명이라는 제목으로 제시한다. 그러면서 카리스마적인 리더십은 조직에서의 승진이나 관료적인 승진을 통해 지도자의 자리에 간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온다고 한다. 그러한 권위를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은사와 열매를 보고 회중이 동의할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임명된 사도는 계속해서 점검을 받아야 하는데, 그는 사도들이 세 가지로 점검받는다고 한다. 하나님께, 동료들에게, 그리고 사도로 파송한 지역교회로부터 점검받는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실제로 이런 점검이 체계적으로 일어나는지는 의문이다. 동료 사도들과 회중들에 의한 점검에 사도로 임명받은 목회자들이 자발적이고 공공연하게 복종하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와그너도 실현가능한 소망이라는 다소 불명확하고 주관적인 답변을 보인다.

문화와의 관계에 있어서 신사도운동은 대단히 열린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와그너는 주장한다. 현대의 음악 스타일을 예배에 사용하고, 찬송하는 모습이나 시간에 있어서도 상당히 자유롭다. 무릎을 꿇거나, 손을 들거나, 손뼉을 치거나, 탬버린을 사용하거나, 춤을 추거나 예배당을 돌아다니기도 한다. 예배에 대하여 이렇게 자유로운 태도에 대하여 와그너는 신사도교회의 교인들이 실제로 예배의 관람자가 아닌 참여자가 된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해석하였다. 기도의 분량과 회수에 있어서 신사도교회들은 전통교회들보다 훨씬 많으며, 모든 예배자들이 큰 소리로 통성기도를 하고, 어떤 때에는 예배자들이 함께 방언 기도를 하기도 하고, 생활 속에서도 찬양 기도, 기도 걷기, 기도 여행, 기도 탐사 등 다양한 형태로 기도가 교인들의 생활의 자연스러운 일부가 되도록 시도한다. 즉 신사도운동은 예배와 찬양과 기도에 있어서 자연스러움을 강조하고, 고정된 형태의 전통적인 틀을 거부한다.

헌금은 자원해서 하되, 강력한 결단과 도전을 통해 적극적으로 헌신하게 한다. 십일조는 마땅히 내야 할 책임으로 설명하며, 행하지 않는 자들은 그리스도인의 기본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 것으로 본다. 또한 공격적인 전도로 지역사회를 복음화 하도록 강력하게 도전하고,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 교회가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사명 중 하나라고 가르치는데, 신약성경에 나타나는 모든 은사가 현재에도 존재한다고 믿으며, 더 나아가 초연적인 모든 현상에 대하여 개방적인 태도로 치유, 귀신 축출, 영적 전투, 예언, 쓰러짐, 영적 지역조사, 열성적인 중보기도 뿐만 아니라, 영적 도해를 인정한다. 그들은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과 현상에 대하여 기대하고 동참하며 응답해야 하며, 민감하게 열려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신사도운동에 동참하거나 표방한다고 해서 어느 곳에서나 동일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와그너 계열의 신사도운동가들이 IHOP(International House of Prayer, 국제 기도의 집) 계열의 신사도운동가들로부터 비판을 받는 경우도 볼 수 있듯이 신사도운동은 특정 교단이나 신학교를 중심으로 한 것이 아니며, 조직적으로 진행된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 모습과 형식이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

 

2) 신학적 특징

 

와그너는 교회의 지각변동에서 신사도교회의 5대 중심 가치를 제시한다. 첫째, 신사도교회의 신학에는 절대적인 기준들이 있다. 핵심적인 신학적 가치들에 대해서 절대적인 엄격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것을 삶의 궁극적인 의미에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이라고 와그너는 설명한다. 둘째, 동시에 신사도교회의 교회론은 세상을 향하고 있다. 신사도교회의 엄격성의 또 다른 특징은 잃어버린 영혼들에 대한 불타는 열정이다. 와그너는 교회가 봉사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하는 이해를 비판한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존재목적은 잃어버린 영혼들에 대한 구령 사업이며, 천국과 지옥의 존재에 대한 강조는 이러한 구령의 열정에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고 믿는다. 셋째, 신사도교회의 종말론은 낙관적이다. 신사도교회의 종말론의 핵심은 사단이 패배하고 있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모든 일이 잘 되고 있으며, 영적 전투에서의 승리는 계속될 것이라는 것이다. 비록 사회 분열과 환경오염 및 삶의 고통과 상처들이 많아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러나 그들은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얻을 것이고, 교회는 계속 번성하며, 사단의 진은 무너지고 어둠의 세력은 깨어지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은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굳게 믿는다. 넷째, 신사도교회의 조직은 인간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인간을 신뢰하지 못하는 전통적인 조직 구조를 거부하고 개인을 신뢰하는 바탕 위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조직을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 와그너의 생각이다. 이것은 다섯 번째 가치와 연결된다. 다섯째, 신사도교회에서는 지도자들을 신뢰한다. 이것이 신사도운동의 모든 급진적인 변화 요소들 중 가장 급진적인 부분이다. 지도자에 대한 신뢰를 성령께서 개인에게 위임하고 있는 영적 권위의 분량이라고 표현하는데, 여기에 나오는 가장 중요한 두 단어는 개인권위이다. 신사도교회에서는 성령께서 위임하시는 권위가 개인에게 부여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통 교회가 노회, 당회, 위원회 등과 같은 결의 집단에 권위를 부여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와그너는 개인에게 권위를 부여할 경우 얻게 되는 두 가지 큰 유익을 제시하는데, 비전을 하나로 모을 수 있다는 점과 창조성이 발휘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는 비전이 분산될수록 조직이 약해진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라고 하면서, 비전이 분명한 개인에게 막대한 권한을 주고, 지도자 개인에게 무슨 일을 할 때마다 승인을 받지 않아도 되는 자유 재량권을 주었을 때, 그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만큼의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3) 목회적 특징

 

와그너는 신사도교회에서의 목사의 역할과 관련된 여섯 가지의 기본 가설들을 제시한다. 첫째, 목회자가 비전을 제시한다. 자신들을 단순히 조력자정도로 여기는 전통적인 목회자와는 달리, 신사도적 목회자들은 교회의 방향성을 교인들에게 묻지 않는다. 그들은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하나님께 직접 물으며,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실 것과 교회에 대한 비전을 그들의 생각 가운데 심어주실 것을 확신한다. 교인들은 목회자를 따르며 그 목회자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지원한다. 사람들이 신사도교회의 교인이 되고자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이 목회자의 비전을 높이 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둘째, 목회자는 지도력이 전공이고 관리 운영은 부전공이다. 비전을 가진 지도자들은 대부분 관리 운영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인내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 와그너의 생각이다. 그러나 와그너가 보기에 이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교회가 어느 정도 성장하여 전임사역자를 추가로 채용할 만큼 되면, 즉시 팀을 운영할 관리자를 고용하면 된다는 것이다. 지도자는 선박의 소유주이고 운영자는 키잡이이기 때문에, 지도자가 배의 갈 곳을 결정하면 그곳에 어떻게 도달할지 궁리하는 것은 운영자에게 맡기라는 주장이다. 셋째, 목회자는 큰 줄기의 정책만 결정하고 나머지는 위임한다. 목회자가 가장 높은 단계의 주요 정책들을 결정하며, 나머지 정책들에 대해서도 교회가 내리는 결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목회자에게 권한을 준다. 이것이 와그너가 보는 성경적 교회관이다. 교회는 민주적 기관이 아니라는 것이다. 교단 교회들을 약화시킨 주원인은 교회에 민주주의가 들어왔기 때문이며, 이 일은 성경적이기 보다는 문화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넷째, 목회자는 견고하고 능력 있는 운영팀을 만든다. 신사도교회에서 전통 교회에 상응하는 기관은 운영팀인데, 이 팀은 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역을 관리 운영하는 역할을 한다. 그들은 목회자를 섬기는 팀들이다. 목회자가 받은 비전을 장로들에게 전달하면, 장로들은 이 비전을 바꾸거나 반대하기 보다는 교인들에게 상세하게 설명해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장로팀은 비전을 창출하기 보다는 담임목사를 도와 비전을 수립하는 일에 협조한다. 혁신적인 지도자들은 대화를 통해 설득하거나 전략적인 노력을 통해 자신들의 비전에 반대하는 생각들을 과감하게 물리치고, 뜻을 같이하여 따르도록 권고한다. 그들이 세운 목표는 대담하고 그들이 갖고 있는 은사와 재능은 커다란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의 소망을 이루게 한다. 다섯째, 목회자는 종신 목사로 부름 받는다. 와그너는 성장하는 교회들은 성장이 멈추거나 감소하는 교회들보다 목회자들의 임기가 더 긴 특징이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목회자들에게 평생을 그곳에서 살라고 말씀하셨다고 주장하면서, 종신 목사로 섬기게 될 때 그 지역에 대한 강한 헌신을 낳고, 그 결과 영적 권위가 새로운 차원으로 놀랍게 상승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부부 목사가 경영하는 교회가 많아진다는 특징으로도 나타난다. 여섯 번째, 목회자가 자신의 후계자를 선택한다. 목회자가 하나님께로부터 후계자 후보를 추천받고, 장로회가 승인한 후에 교인들의 승낙을 얻기 위해 권고한다. 이렇게 할 때 삼중 증거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종종 은퇴하는 목사가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주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은 예외적인 경우이지 일반적인 규칙은 아니라고 와그너는 말한다. 그리고 아들이 목회자로서의 자격요건을 충족시킨다는 조건이라면 기도의 응답에 따라 자녀를 후계자로 지명할 수도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특히 외부에서 모셔오는 것 보다 내부 사람을 후계자로 결정하는 것이 승계과정에 있어서 점진적이고 자연스럽다고 보아, 그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5. 신사도운동에 대한 평가

 

위에서 신사도운동의 현상적, 신학적, 목회적 특징들을 살펴보면서 많은 부분이 한국 교회들이 일반적으로 추구하는 형태와 닮아있다는 점에서 새삼 놀라게 된다. 열정적인 찬양과 기도를 비롯하여 초자연적인 은사를 사모하는 것, 지도자의 신적인 권위를 추구하여 목사님을 힘들게 하면 벌을 받는다.’는 등의 속설이 만들어지는 현상, 신학적 결과물을 경시하여 그것을 학문성의 울타리 안에만 가둬두려고 하는 목회 현장의 분위기, 세상의 사고방식에 대한 철저한 배타성, 목사를 하나님과 교인 사이의 중개자로 보려는 태도들, 그리고 부분적으로 종신목사직에 대한 인식 등이다. 본 장에서는 앞 장에서 제시한 신사도운동의 내용과 특징들을 항목별로 묶어서 평가하고 비판할 것이다.

 

1) 지도자 개인에 대한 절대적 신뢰에 대하여

 

신사도교회는 전통 교단의 신조와 헌법에 대해 반대한다. 이것은 교단에서 지도자들끼리 혹은 지도자와 개인 간의 불신에 대해 거부하는 것이며, 그러한 불신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 율법적인 규칙들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신사도교회들은 개개인들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와그너는 이와 같이 전통 교단의 목사에 대한 개념이 잘못된 것임을 지적하면서,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하는 교회 체제를 비판하였다. 그는 교회와 교단의 목사직에 대한 개념이 직업화되었으며, 교단에서 목사의 임지를 조정하고 목사는 목회를 하는 구조에서 벗어나서, 목사가 교인들의 욕구를 채워주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고 비난한다. 심지어 목사가 교회의 당회나 위원회에 잘 보여야만 해고되지 않는 구조가 되어버렸다고 비판한다. 한 마디로, 기존 교단의 교회들은 목사의 지도력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잘못되었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그래서 신사도교회는 지도자인 목회자의 사도적 지도력을 전적으로 신뢰하라고 강조한다. 그들은 현대의 새로운 사도는 성령에 의해 받은 초자연적이고 탁월한 능력을 수여받은 자로 주장한다. 사도의 직분을 받은 자들은 수십 개에서 수백 개의 교회를 지도하는 지도력을 부여받는데, 이러한 형태를 사도적 네트워크라고 명명한다. 카리스마적인 지도력을 부여받은 자를 목사 위의 항존직으로 설명하면서 사도라고 지칭한다. 사도로 지칭되는 지도자에게는 독자적인 권력이 주어지는데, 그 권력은 실로 막대하다. 재정적인 측면에서 상당 부분을 개인적인 권한으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으며, 장로들과 위원회는 지도자의 뜻을 반대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막대한 지도력은 인간의 연약함과 부패성의 문제를 의도적으로 외면한 것이다. 사도라 칭함 받는 개인의 지도력의 오류는 교회 전체에 막대한 영양을 미친다. 실제로 한국교회 내의 사례로 볼 때, 담임목사의 개인 윤리적 문제로 인하여 교회의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경우들은 거의가 제왕적 리더십을 가진 교회들이다. 이러한 사도직의 권력은 개개인의 도덕적 문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신사도교회 전체가 안고 있는 화약고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어떤 경우에도 인간 개인에게 절대적인 권력을 주는 것은 성경적인 교회론이 아니다. 이는 로마교회의 교황정치를 통해서도 이미 드러난 바이다. 개혁교회의 전통은 개인의 권력이 교회에 미치는 위험을 심각하게 고민하였으며, 그래서 개혁교회는 개 교회의 자율성을 인정하면서 목회자를 세우는 기준을 강화하고, 개인이 아닌 노회를 통해 목사와 교회를 관리하고, 회중을 통하여 목회자의 청빙을 제도화한 것이다.

 

2) 예언과 은사 사역에 대하여

 

신사도운동의 가장 큰 논란거리 중의 하나가 바로 예언과 계시의 문제이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예언자와 사도들을 통하여 말씀과 위임과 파송을 행하신다는 것이다.

 

사도는 지정된 사역의 영역 내에서 교회의 기초적인 구조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권위와 더불어 은사와 가르침과 위임과 파송을 받은 기독교 지도자이다. 사도는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음으로써,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을 위한 질서를 세워나감으로써 이 일을 성취할 수 있다.”

 

여기에서 예언과 계시의 수단으로 초자연적인 은사들이 사용된다. 이들은 예언의 메시지를 받는 방편으로서 주로 꿈, 환상, 음성, 입신 등 다양한 은사들을 사용하며, 때로는 계시적 선포라고 하며 신자들에게 전달한다. 이처럼 신사도운동에서는 교회가 직통 계시를 받는 사도와 예언자의 모델로 변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하나님은 오늘도 세계적으로 사도와 예언자들의 팀을 꾸리신다고 한다. 그런 요청에 응답하는 교회만이 하나님의 기름 부으시고 임명하시는 권위로 돌아오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여기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계시의 종결성에 관한 것이다. 계시의 종결에 관하여는 성경에 직접적인 언급이 없지만, 신약성서 이후로 이제는 더 이상 특별한 계시의 필요성이 없어졌고, 최종적인 계시인 성경의 권위를 위해서는 더 이상의 특별계시가 있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 전통 신학의 입장이다. 결국 계시의 종결성이라는 주제는 계시의 완전성과도 이어진다. 구약시대부터 초대교회까지는 완전한 성서가 없었고, 예수의 메시아 사역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예언과 계시가 필요한 시대였지만, 이제는 완전한 계시인 성경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예언과 계시는 필요가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인식을 분명히 해야 한다. 성령은 성자의 임재를 우리에게 체험하도록 하셨다.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은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방편이었다. 그러나 신사도운동은 삼위일체의 신학 보다는 표적과 기사로 나타나는 성령의 능력을 우위에 둠으로써 신학의 균형을 깨뜨려버렸다. 표적과 기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증거일 뿐이다.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으며, 필연적이지도 않다. 영적 능력 대결은 하나님의 최고의 승리인 십자가와 부활로 이미 완결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정한 권능을 보여주는 도구는 초자연적이고 떠들썩한 세속적 방법이 아니라, 거룩함과 신실함으로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사는 것이며, 진정한 능력은 은사가 아니라 경건이다.

 

3) 실용주의 방법론에 대하여

 

신사도운동은 형식적인 모든 영역에서 현대 문화를 교회에 적용시키는데 매우 관대하고 적극적이다. 그들은 예배 형식에 있어서 현대 음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감성을 자극하거나 교회 행정에 있어서는 현대 기업들이 행하는 마케팅 전략을 적극 차용한다. 신사도운동은 신학적 보수성을 표방하면서 엄격성과 절대성을 강조하는 반면에, 문화적 방법론에 대해서는 거의 무비판적으로 자유롭게 개방되어 있다. 이렇게 볼 때 신사도운동의 문화관은 리차드 니버가 그리스도와 문화에서 제시한 다섯 가지 유형 중에서 문화적 공동체 안에서 아무런 생소함도 느끼지 않으며 긴장감을 느끼지 않는” ‘문화에 속한 그리스도(Christ of Culture)’의 형태를 취한다. 이들에게 그것이 세속적인 위험성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단지 교회 성장이라는 결과론적인 차원에서의 판단만이 중요하다. 이것은 신사도운동의 실용주의적 태도를 잘 드러내주는 특징이다. 피터 와그너는 신사도교회가 모달리티(Modalities)’의 요소보다 소달리티(Sodalities)’의 요소가 강하다고 하였다. 모달리티는 인간 중심이며 구성원이 새로 태어나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룹에 소속되고 그 안에서 교제가 이루어지는 조직인 반면, 소달리티는 업무 중심적이며 새 구성원은 보통 업무에 도움이 되느냐의 기준으로 채용된다. 소달리티에서는 일이 먼저이고 사람은 그 다음이다. 그것이 교회가 성장하기 위한 조건이기 때문에 그러하다는 것이다. 피터 와그너는 조지 바나의 말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목회자의 방향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다른 교회로 보내라. 심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 논리를 따르라. 완고한 자들로 그들에게 맞는 교회를 찾도록 권하라. 그들을 적, 혹은 무지한 자나 문제아로 삼지 말라. 당신의 일은 그들이 결정을 내리도록 도움으로써 과연 나머지 승무원들과 조화롭게 항해를 하도록 하든지, 아니면 자신이 원하는 목적지로 향하는 배를 찾도록 하든지 하는 것이다. 만일 이런 문제가 있는 사람을 당신의 배에 붙잡아 두면, 확언컨대 그들은 당신을 모험에서 끌어내리는 닻 역할을 할 것이다. 그들도 행복하지 않고, 당신도 행복하지 않으며, 교회도, 교회를 방문한 사람들도 모두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이때 아무도 승리하지 못한다.

 

이것이 실용적인 측면에서는 효율적이며, 교회를 단시간에 급성장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일지는 모르나, 성도들을 양육하고 제자화하고, 불신자들에게 인간적이고 인격적인 만남으로 복음을 전하는 교회 목회 본연의 방향성과는 관계가 없다.

 

4) 대형교회 지향성에 대하여

 

신사도운동은 그 중심에 대형교회를 향한 지향이 자리 잡고 있다. 그들의 변함없는 목표는 교회를 영적으로 성장시켜 대형교회로 나아가는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신사도교회의 특징들은 대부분 오직 이 한 가지 목적, 대형교회를 향하여 전진하기 위하여 실용적으로 필요한 덕목들이다. 그러므로 신사도운동에는 신학이 없다. 여기에는 오직 개인적인 체험으로서의 거듭남과 은사 체험이 있을 뿐이며, 교회 성장을 위한 사회학적 접근이 있을 뿐이다. 여기에 굳이 신학이라는 이름을 붙이고자 한다면, 그것은 교회 성장의 방법론적 신학이요, 오로지 앞으로의 전진만을 외치는 낙관적 사고방식이며, 현상적 인간승리의 신학이다.

전통적인 교단을 부정하는 신사도운동이 전통 교단의 신학교육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신학적 체계와 규정들과 교리 보다는 실용주의와 문화적 자유를 선호하는 그들에게 신학적 신조나 가치들은 자유를 억압하는 형식적인 틀로 여겨질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신학적 방종으로 이어진다. 각 셀들이 대부분 자율적으로 운영되며, 셀 리더들은 교회로부터 많은 권한을 위임받아서 세례를 주고, 성찬을 하고,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하고, 가르치고, 결혼 주례를 하고, 장례를 지내고, 필요한 기금을 조성한다. 이런 구조에서 목사와 일반 교인들의 역할 경계는 자연스럽게 깨어질 수밖에 없다. 신사도교회들은 모든 교인이 사역자임을 말한다.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나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영적 은사를 나눠 주시니라.”(고전 12:11)을 근거로 모든 성도들이 은사를 통해 사역자로 부름 받았음을 강조한다. 이들은 성직자와 평신도라는 분류를 거부하고 진일보된 용어로 전임사역자(staff)’자원봉사자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이것은 신사도교회의 신학 교육에 대한 불신과 연관이 있다. 신학적 숙고 없이 교회의 양적 성장을 목회 성공의 판단기준으로 삼는 것은 현실적 필요를 추구하는 실용적 사고에서 비롯된, 비성서적이고 인간적인 방법론일 뿐이다.

 

6. 결론

 

신사도운동과 여기에 속한 교회들은 많은 논쟁거리 가운데에서도 외형적인 성장에 있어서는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어 온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결과물은 기존의 교회들이 심각한 정체와 양적 감소를 겪고 있는 것과 대비되어 더욱 주목할 만한 현상으로 주목하게 된다. 이것은 옳고 그름을 따지기 이전에 이 운동이 추구해온 차별화된 목회 방식에 있어서 기존의 교회들이 채워주지 못했던 무엇인가에 대하여 성도들이 반응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수많은 신학 이론들과 다양한 목회 방법론들이 홍수처럼 범람하고 있으면서도 교회의 성장은 거의 멈추어져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나름대로 차별화된 목회방향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는 이 운동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신사도운동은 목회의 방향을 보다 근본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어서, 교회 조직의 권위에 대한 강력한 개혁을 단행하였다. 이것은 단순한 직무상의 배치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철저하게 목회자 중심으로 구성된 영적 공동체를 추구하였으며, 목회자가 받은 비전을 중심으로,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온전히 목적에 의해 이끌리는 교회 구조를 제시하였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수용할만한 측면이 있다. 지식과 방법론 위주로 치우쳐 있던 지존의 목회 패러다임을 체험을 강조하는 성령운동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했다는 점은 의미가 있는 시도이다. 모든 성도들이 자기 은사를 찾아 교회를 섬길 수 있는 자리가 주어짐으로 사역의 방관자나 타의에 의하여 교회 생활하는 교인이 기존 교회보다 줄어들고, 더 생동감 있는 교회가 이루어지는 조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적인 시도들에도 불구하고, 개인에 대한 지나친 신뢰와 의존, 비성경적 예언과 은사 사역, 실용주의적 방법론, 대형교회 지향성 등 신학적으로는 동의하기 어려운 논리를 전개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더 큰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체험 중심의 신앙은 자신의 주관이 중심이 된 것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검증의 작업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신사도운동은 그러한 검증을 소홀히 하고, 오히려 주관성을 더욱 극대화하였다. 이렇게 될 때, 목회자가 건전한 신학과 바람직한 판단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면 효율적이고 역동적인 목회가 될 것이지만, 그 반대의 경우라면 엄청난 피해가 발생할 것이고, 그 최대의 피해자는 고스란히 성도들이 된다. 지나친 체험 위주, 은사 위주의 목회가 바른 신학적 바탕 위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위험한 신비주의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또한 신사도적 교회들에서 거의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독선과 배타성은 사랑과 겸손을 근간으로 하는 그리스도 정신에 위배되는 경향이 있다.

이상으로 종합해 볼 때, 신사도운동은 현대 목회의 패러다임 속에서 교회가 성장하지 못하는 현상을 보완해줄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나름대로의 시사점이 있지만, 이 운동의 신학적 기반이 튼튼하지 못하며 그로 인하여 파생되는 여러 가지 오류들이 있다. 그러므로 비록 외형적으로는 성장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러한 오류와 문제점들을 수정 보완하지 않는 한, 불건전한 운동으로 치우치거나 이단적인 흐름으로 향할 위험이 크다. 외형적인 성장만이 교회 성장이 아니며, 교회의 진정한 목적인 하나님 나라 선포와 말씀에 순종하는 복음적 희생의 생활, 그리고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에 충실할 때에 비로소 온전한 성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정이철, 신사도운동에 빠진 교회,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2

피터 와그너, 오늘날의 사도, 박선규 역, 서울: 쉐키나출판사, 2008

피터 와그너, 교회의 지각변동, 방원선, 권태진 역, 과천: WLI korea, 2007

피터 와그너, 목사와 예언자, 임종원 역, 서울: 도서출판 진흥, 2004

피터 와그너, 신사도교회들을 배우라, 홍용표 역, 서울: 서로사랑, 2000

피터 와그너, 3의 바람, 정운교 역, 인천: 임마누엘, 1991

리차드 니버, 그리스도와 문화, 김재준 역,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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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전동호 2018.2.17 16:48

    교회와 교단의 목사직..직업화되었으며,
    교단에서 목사의 임지를 조정하고,
    목사는 목회를 하는 구조에서 벗어나서,교인들의 욕구를 채워주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신사도적 개혁 운동. 조금 들어다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주위 큰 교회들이 깊이 관여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신앙적인 고민으로 성장하고 주님 뜻을 찾아가는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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